오래전에 무전장수(無錢長壽)라는 키워드로 칠순 거지로 살지 않으려면 돈의 수명을 자신의 수명만큼 연장해야 한다는 기사를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었다. 이 기사를 읽다 보니 평소에 기업이나 지자체에서 은퇴 재무설계 강의를 하면서 교육생에게 강조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핵심은 50대에 들어서면 재무적인 선택을 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시기에 옳지 않은 판단을 하거나 잘못된 결정을 유도하는 사람들에게 이끌려 그릇된 선택을 하게 되면 은퇴 후에 돈에 쪼들리는 무전노인(無錢老人)’으로 살 확률이 상당히 높아진다. 그런 선택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서는 세 가지만 중점적으로 살펴보겠다.

 

첫째,
새로운 보장성 보험
절대 가입하지 마라

얼마 전에 오랜 고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50대 중반의 부부인데 기존에 가입했던 보장성 보험을 해지하고 새롭게 출시돼 더 오래 더 많이 보장된다는 보험에 가입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보험료를 15년 동안 내 5년만 더 내면 계속 갱신해야 하는 실손 의료비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보험을 해지하고 앞으로 20년 동안 매월 40만 원씩을 내야 하는 보험에 새로 가입하겠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통화하면서 설득한 끝에 결국 새로운 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기존 보험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 부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한 데는 대략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현재 대기업에 다니고 있어 연봉이 높아 퇴직 전까지 매월 40만 원을 보험료로 내는 것이 아깝지만 큰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앞으로 5년 후에 퇴직하게 되면 지금 받는 월급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생활해야 하는데 그때 매월 40만 원씩을 보험료로 내면 큰 부담이다. 먼저 퇴직한 사람들을 보면 퇴직 후에 1~2년 정도 보험료를 더 내다가 그 이후에는 보험료 부담 때문에 부분 해지를 통해 보험료를 줄이던지 전체를 해지하는 경우가 흔하다. 보통 20년 동안 보험료를 내는 조건으로 보험에 가입하는데 앞으로 퇴직이 5년 남은 상황에서 퇴직 후에 15년 동안 더 많은 보험료를 내는 것은 무전노인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퇴직 후에 직장 다닐 때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건강보험료가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서 부담이 커지는데 개인 보험료까지 더하면 은퇴 생활비에 큰 구멍이 난다.

또 한 가지는 15년 전에 보험에 가입할 때는 나이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 보장 항목 중의 하나인 암 진단비 2,000만 원을 보장받기 위해 내야 했던 보험료가 그만큼 적었다. 하지만 그때 저렴하게 가입한 보험을 해지하고 지금 나이에 암 진단비 2,000만 원을 보장받으려면 처음 가입할 때보다 두 배 이상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즉 기존에 가입했던 보험은 저렴한 보험료로 앞으로 5년만 내면 보험료를 더 이상 내지 않고도 80세까지 보장받을 수 있지만 새롭게 가입하면 두 배 이상 비싼 보험료로 앞으로 20년 동안 내야 한다. 그것도 한 푼이 아쉬운 은퇴 생활기에 말이다.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찬찬히 따져보면 현재 가입한 보험이 좀 부족하더라도 그냥 가지고 가는 게 기존 보험을 해지한 후 새로운 보험에 가입하는 것보다 훨씬 현명한 결정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매월 40만 원씩 20년을 내면 원금만 9,600만 원이라는 큰 금액이다. 이 정도 규모의 돈이 은퇴 생활비에 보태지면 좀 더 안정적인 은퇴 생활을 할 수 있다. 지금 가입한 보험이 조금 부족하다면 퇴직 전까지 새로 가입해서 내야 하는 보험료와 현재 납입하고 있는 보험료의 차액만큼을 따로 모아 놓았다가 아프거나 다쳤을 때 지금 가입한 보험의 보험금으로 부족하면 모아놓은 돈에서 그 차액만큼만 지출하면 된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퇴직 시점에 모아놓은 자산에서 현재가치로 3,000만 원 정도를 의료비 통장으로 따로 떼어 놓았다가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그 돈으로 부족분을 해결하면 된다. 보험료로 낸 돈은 보험회사가 보관해 놓았다가 보험금 지급 사유가 발생할 때만 내게 지급하는 돈이지만 내가 따로 모아놓은 돈은 오롯이 내가 보관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마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돈이다. 내 의지에 따라 그 돈을 잘 운용해서 더 크게 키울 수도 있다.

 

둘째,
보험회사 월납 연금보험
절대 가입하지 마라

보험회사의 연금보험은 내는 매월의 보험료에서 사업비 비중이 상당히 크다. 보통 월 보험료의 12% 내외인데 매월 50만 원을 연금 보험료로 낸다면 50만 원의 보험료 중 6만 원이 사업비라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50만 원 중에 6만 원을 먼저 사업비로 떼고 나머지 44만 원이 적립되는데 현재 공시이율로는 가입 이후로 8~9년이 돼야 비로소 원금이 된다. 55세에 연금보험에 가입한다면 63세나 돼야 원금이 되는데 언제 이 돈이 불어나 실질적인 연금으로 역할을 하겠는가? 아마 80세쯤 연금으로 받아야 보험회사 직원들 말처럼 그나마 비과세와 복리 효과를 누리더라도 물가상승에 따른 화폐가치 하락분까지 감안하면 납입원금 대비 조금 더 나오는 연금액이 된다. 지금 연금이 부족하다고 해서 80세쯤에 연금으로 받아야 그나마 손해를 보지 않는 보험회사 연금보험에 가입하면 무전노인으로 살 가능성이 커지니 50대에는 절대 매월 내는 연금보험에 가입하면 안 된다

50대가 개인연금이 부족해서 이를 보완하려면 세액공제는 물론 과세이연 효과까지 누릴 수 있는 연금저축이나 IRP에 가입하는 게 최우선이다. 퇴직 전에는 낸 금액에 대해 연말정산 할 때 세액공제를 받아 추가 수익을 올리고 퇴직 후에는 납부를 중단하거나 능력이 된다면 계속 내 노후생활 후반부를 대비하면 된다. 세액공제만이 아니라 운용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잘 투자하면 노후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 역할을 톡톡히 해 노후 생활비에 큰 보탬이 되게 만들 수도 있다.

 

셋째,
퇴직연금 중도 인출
절대 하지 마라

공적연금과 퇴직연금 그리고 개인연금의 3층 보장으로 은퇴 후에 현재 받는 월급처럼 매월 현금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은퇴 준비의 핵심이다. 퇴직 5년 정도 남긴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은퇴 재무설계 강의에 가서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받을지 아니면 연금으로 받을지에 대해 질문하면 교육생들의 70%는 연금으로 받겠다고 답한다. 하지만 통계자료를 보면 건수 기준으로는 90% 이상이, 적립 금액 기준으로는 70% 이상이, 연금이 아니라 일시금으로 받는 게 현실이다. 그나마 매년 연금으로 받는 은퇴자가 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특히 퇴직연금 적립 금액이 적을수록 일시금으로 받는 비중이 높다. 적립 금액이 적은 이유는 퇴직연금을 주택구매나 전세보증금을 마련하느라 중도에 찾아서 사용해버렸거나 잦은 이직을 하면서 그때그때 퇴직금을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면 남은 금액이 많지 않다 보니 일시금으로 찾아 흐지부지 사용하다 보면 퇴직연금이 연기처럼 사라져 은퇴 생활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 ‘무전노인으로 살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는 퇴직연금을 절대 중도에 찾아서 사용하면 안 된다. 대신에 최대한 퇴직연금을 적극적으로 운용해서 퇴직연금의 적립액을 조금이라도 더 키워 놓아야 은퇴 후에 공적연금과 개인연금에 더해 더 많은 생활비를 월급처럼 받을 수 있다. 대부분 공무원연금을 받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국민연금보다 공무원연금 수령액이 훨씬 많아 은퇴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이 아니라 국민연금에 가입된 직장인은 공무원연금을 받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만 말고 이 갭을 조금이라도 메꿀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퇴직연금을 잘 지키고 불려 은퇴 후에 연금으로 받는 방법이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다.


 

칼럼니스트 이천

<내 은퇴통장 사용설명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