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급여를 연금으로 받아야 하는 5가지 이유

기업이나 지자체에 은퇴 재무설계 강의하러 가면 꼭 묻는 말이 있다. 퇴직급여를 일시금으로 받아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 받는 월급처럼 매달 연금으로 받아 은퇴 생활비로 사용할지에 관한 질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일시금으로 받겠다는 수강생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요즘은 연금으로 받아 안정적으로 은퇴 생활을 하겠다는 수강생이 늘고 있어 안도하고 있다. 강의 중에 불가피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연금으로 받아야 불안하지 않은 은퇴 생활을 할 수 있으니 꼭 연금으로 받으라고 몇 번이고 강조한다.

이렇게 강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시금으로 받아 창업하거나 다른 투자를 하다가 실패하면 은퇴 생활에 치명상을 입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는 사업이나 투자하다가 실패해도 만회할 시간이 충분하다. 하지만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급여가 가장 높은 주요한 일자리를 잃거나 은퇴 시기에 접어든 후에 크게 실패하면 만회할 시간이 없다. 우리나라는 OECD 노인빈곤율 1위인데 여지없이 그 대열에 합류해 빈곤한 노인으로 살 가능성이 커진다. 저소득 일자리나 노인이 하기 힘든 일을 하면서 그때 왜 내가 사업이나 투자해서 이렇게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가?”라며 한탄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 말고도 퇴직급여를 일시금으로 사용하지 않고 매달 연금으로 받아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그 내용에 대해 하나씩 짚어보겠다.

첫째, 퇴직소득세를 30~40% 줄일 수 있다.

55세 이전에 퇴직하거나 퇴직급여가 300만 원을 넘으면 퇴직급여를 무조건 IRP(Individual Retirement Account)로 받아야 한다. 55세가 넘으면 퇴직급여의 유형에 따라 일반계좌나 연금 계좌(IRP나 연금저축)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퇴직급여를 받을 수 있다. 급여계좌 같은 일반계좌로 퇴직급여를 받으면 퇴직소득세를 뺀 나머지 금액이 이체된다, 하지만 IRP로 받으면 퇴직소득세를 포함해 이체된다. 퇴직소득세에 대한 과세가 미뤄지는데 이렇게 과세가 미뤄진 세금은 퇴직급여를 IRP에서 꺼낼 때 내면 된다. 연간 연금 수령 한도를 초과해서 찾은 금액은 납세가 미뤄진 퇴직소득세 100%를 내야 하지만 연금 수령 한도 이내에서 연금으로 받으면 퇴직소득세를 30~40% 감면해준다. 10년 이내로 나눠 받으면 30%, 11년 차부터는 40%가 감면된다. 즉 퇴직급여를 일시금으로 받아 쓰면 퇴직소득세를 100% 내야 하지만 연금으로 받으면 퇴직소득세를 60~70%만 내면 된다.

둘째, 과세이연된 퇴직소득세까지 운용해 연금 계좌 적립금을 불릴 수 있다.

연금으로 받기 전까지는 과세가 미뤄진 세금까지 투자 상품이나 예금 상품으로 굴려 연금 계좌 적립금을 더 늘릴 수 있다. 퇴직소득세가 1,000만 원인데 5년 후에 연금으로 받고 투자수익률이 연평균 5%라고 가정하면 약 276만 원의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10년 후에 연금을 받는다면 약 629만 원의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으니 과세이연 효과가 상당히 크다.

셋째, 연금 계좌 내 운용상품의 과세도 연금 받을 때까지 미뤄진다.

은행에 예금해서 이자를 받거나 ETF에 투자해 분배금을 받으면 이자나 분배금의 15.4%를 이자나 배당소득세 명목으로 원천 징수한 후 나머지 금액만 준다. 하지만 연금 계좌(IRP나 연금저축)에서 예금하거나 ETF에 투자해 이자나 분배금을 받으면 바로 15.4%의 세금을 떼지 않는다. 나중에 연금으로 받을 때 연금소득세를 떼는데 15.4%가 아니라 연령별로 5.5~3.3%의 세금만 뗀다. 세율도 대폭 낮아지지만, 퇴직소득세의 과세이연 효과에서 설명했듯이 원천징수 되지 않은 이자나 배당소득세까지 연금 받을 때까지 운용해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연금 받을 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복리 효과까지 알뜰히 누릴 수 있다면 추가 이익이 더 커져 연금 수령액이 함께 늘어난다.

넷째, 세금을 늦게 낼수록 세금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다.

강의에서 이 내용을 설명할 때 짜장면값으로 비유하면 수강생들의 이해가 빠르다. 학생 때 친구들과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고 냈던 금액과 지금 내는 금액에는 차이가 크다. 하지만 금액이 커졌다고 짜장면을 여러 그릇 주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퇴직급여가 1,000만 원이고 일시금으로 찾아서 퇴직소득세를 바로 내면 현재 돈의 가치로 1,000만 원을 내는 것이다. 하지만 5년 후, 10년 후에 1,000만 원을 낸다면 명목 금액 1,000만 원에는 변함이 없지만 화폐 가치는 시간이 흐르는 만큼 떨어져 실제 부담이 줄어든다. 늦게 낼수록 같은 명목 금액이라도 세금에 대한 부담이 시간에 비례해 줄어든다.

다섯째, 목돈을 탐내는 사람들로부터 내 노후를 지킬 수 있다.

앞에서 퇴직급여를 일시금으로 찾아 사업이나 투자했다가 실패할 때의 위험에 대해 언급했는데 거기에 더해 내 목돈을 탐내는 사람들로부터 노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연금으로 받는 게 낫다. 자녀가 사업이 어렵다고 도움을 청하거나 친족이나 지인이 딱한 사정을 앞세워 돈을 빌려달라고 요청하는데 목돈을 보유하고 있다면 냉정하게 거절하기 어렵다. 용케 거절했더라도 마음이 약하면 오랫동안 마음이 불편하다. 심할 때는 요청을 거절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미안한 감정이 든다. 이런 불편함이 거북해 큰돈을 지원하거나 빌려줬다가는 그 대가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주변에서 돈은 돌려받지 못하고 사람도 잃고 노후의 여유로운 삶까지 파괴된 사람들을 보는 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연금으로 받으면 목돈이 없어서 자녀를 도와주거나 지인에게 돈을 빌려줄 수 없다. 목돈이 없어서 못 한 거니 마음이 불편하지도 않고 노후에 가뜩이나 줄어든 친족이나 지인을 잃지 않아도 된다. 대신 매달 정해진 날에 연금을 또박또박 받으면서 여유로운 은퇴 생활을 즐길 수 있다.

이외에도 증권사 연금 계좌로는 연금을 받으면서도 적립금을 앞에서 언급한 과세이연 효과까지 누리면서 운용할 수 있다. 매월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을 늘려 은퇴 생활비 수명을 연장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강의에서 연금으로 받는 게 일시금으로 받는 것보다 더 좋은 이유까지 설명하고 나면 일시금으로 받겠다고 손을 들었던 수강생 중 일부가 연금 수령으로 마음을 바꾼다. 몰라서 무조건 일시금으로 받으려고 했으나 연금으로 받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다는 것을 알아챈 후에는 연금 수령으로 마음이 기운 것이다.

 

칼럼리스트 이천

<내 은퇴통장 사용설명서> 저자